Artist note
※ 2024_Solo exhibition~
Description: Concrete textures, corroded iron textures, iron sculptures that symbolize modern people, courier invoices, figures from primitive murals, numbers, electronic accessories, symbols of extinct animals, etc. are all symbols of the past and modern times.
Harmonizing these elements and drawing them separately or together in the actual parcel box, which is most commonly used in modern times, instead of canvas, the message is that it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today's world to coexist, coexist, and restore sustainable human minds.
Balance, harmony, reflection, recovery, humanity, peace, coexistence, symbiosis, order, yin and yang and respect and love are mainly used as the names of the works.
Art is the product of creation that has always awakened civilization and embodied imaginary results that exemplify what is right to do, advancing the concept of the public and leading humanity ahead of its time.
I work on it ever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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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_Solo exhibition
Piece title: Are human beings currently living well?
Did humans create the behavioral privileges that they have enjoyed in the history of mankind? Is it right to say that humans are the only entity that governs the world in the place called the earth? If it is so, were they given the qualification to govern or did they grant themselves with it?
Are we protector or destroyer? Or are we a part of symbiosis relationship with inanimate and animate objects, yet practice special authority?
Are we not defining as we like the properties of creation and extinction in the unlimited expansion of concepts? Is mankind constantly advancing?
Wouldn’t we occasionally have to reflect and ask ourselves the questions like these in a very fundamental approach? Such thoughts that seem pretty big and basic at the same time came to my mind one day.
What is expressed in my pieces are the results of processes left by the time trying to show the opportunities for meditative reflection on the questions like these.
Different objects appearing in the pieces have different meanings and they are the combination and harmony that encompass the past, the present, and the future.
The paper box used instead of canvas (paper box used in product packing) is a common packing container that is used for all good produced by the modern mankind and is the representative object that symbolizes the mankind at present, and cement is also seen as a by-product that defines the civilization.
Images like animals that can’t be really defined (familiar but not clear) are imagination that refers to the lives that became extinct in the history of mankind, and images such as clouds and sun are from fixed patterns that children draw which means purity and reflecting the start.
Transforming coincidental forms that are naturally made while spilling and painting ink on a paper into other images and using them is also a part of theoretical reflection of ego and consolation of life that wants expression to be happy like a play.
Pieces expressed in three-dimensional form are also expressed in the same way in the continuation of properties of plane.
“How do you see it?” is of course subjective of the one who sees it, but pieces expressed in these meanings are the results of these days.
I think that taking a step back to reflect on ourselves is a responsibility and an obligation that humans necessarily have to fol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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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_Solo exhibition
남겨진 것의 뿌리를 껴안기 위한 노력
- E7 근작 전에 부쳐-
비교적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E7의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들로부터 은밀하게 드러나는 형상들의 짜임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없다. 이 점은 우선 화면 속에서 부유(浮遊)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기호화된 형상들이 한 눈에 금새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분명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또 몇몇 작품들의 화면 속 이곳저곳에 그려진 선적(先蹟)인 구성물이 선명하게 납득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그것들 사이에서 서로 끌어당기고, 밀쳐내는 친화력과 반발력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 그것은 하나하나의 작품 공간에서 일시적인 완결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완결성이란 작품 속에서 작가가 꼼꼼하게 구성하고 제어한 풍경이 자연스럽게 제시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작가가 작품에서 제시하고 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풍경은 본능에 따라 단숨에 만들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그의 작품들 위에 칠해진 안료를 문질러 벗겨내고 , 다시 칠하고 문질러 벗겨내는 꼼꼼한 과정이 수차례 반복된다. 용의주도하게 제어 되고 계산된 이러한 구축 - 해체와 해체 - 구축의 과정 속에서 전체 화면과 친화력을 보이는 형상이 화면 위에 등장하게 된다. 그 형상들은 차분하게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서 잊히기 쉬운 그런 형상들이다. 가령, 그것들은 왕관, 갑옷, 마구(馬具), 화석화된 식물, 산, 원생동물, 와당(瓦當)의 문양 등으로 등장한다.
이런 형상들은 다분히 추상화된 기호의 형태로 등장한다. 작가의 이해 방식에 따르자면 이러한 형상들은 “역사의 흔적 위에 상호연관성 있게 배치되어 있으며, 화면 위에 전개된 형상들은 “역사와 결부되어 실존하는 자아의 내면적인 심성을 근본적으로 성찰 할 수 있는 시간적 공간을 제시”하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 노트에 의하면 이 점은,
「여기서 나는 역사적 시점에 일차적 감성이 집결됨을 모태로 하여 나의 작업을 시추하였고, 시대성이 주는 묘한 뉘앙스로부터 역사에 대한 설득력을 가중시키기 위하여 몇 가지 선별적 소재를 도입하게 되었다. 이것을 통한 대상에 대한 논리적 이해와 상황적 감수성을 통하여 관객과의 공감대 형성에 치중하고자 하는 나름대로의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작업 영역에 등장하는 갑옷, 와당, 적삼, 말재갈, 왕관, 고생대 식물의 화석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역사의 흔적(마티에르)위에 상호연관성 있게 배치하고, 현실성을 부여한 추상적 기호 형태들과 조화를 이루게 끔 하고 싶었다.」
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말하자면, 그의 작업과 조형의욕에서 드러나는 회화적 이미지들은 역사성에 근거한 내적 세계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그의 내면의 세계는 과거의 것들을 상상의 현존(現存)으로 승화 시키는데, 그것들은 화면 위에서 자연스럽게 용해되어 스스로 굳어진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그가 제시하는 화면은 오래된 낡은 것을 깊은 땅속으로부터 건져 올려, 그 표면에 묻은 세월의 흙을 곱게 털어내 원상(原像)을 복구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화석을 탐색해내는 고고학적 작업을 보여주는 듯한 것도 보인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그의 작업 세계는 선명한 색채라든가 혹은 명확한 형태구성으로 우리의 지각을 직접적으로 또 화려하게 자극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의 작품들은 차분히 가라앉은 색조의 뉘앙스를 바탕으로 유현(幽玄)하고 암시적인 형상을 통해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를 끌어올린다.
이렇게 화면의 색조가 차분하게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모티프가 되는 형상이 화면의 구성에서 흔들린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도 있다. 말하자면, 안정적인 모습을 그려내길 원했던 것으로 짐작되는 작가의 의도와는 반대로 역설적이게도 약간은 불안정한 정태(靜態)가 화편에서 보이는 경우가 생겨난다는 뜻이다.
이점은 화면 위에 차분하게 앉혀진 형상들이 역사성을 강조하는 구조적인 틀 속에서, 어느 정도 그 틀로부터 반발하려는 운동 지향성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들은 엄격한 의미에서 추상화라기보다는 브리옹(Maroel Brion)이 일컫는 바대로 ‘추상화된 회화’에 가까운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추상화란 절대적인 ‘비대상’(非對象)의 회화로서 자연주의적인 형태에 대한 시사(示唆)나 환기를 거부하는 회화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 반면에 ‘추상화된 회화’는 추상적인 형태가 드러나긴 하되, 그 형상의 근저에 어떤 실제의 대상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 경우 화면에서 형태가 추상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구체적인 대상에서 추출해낸 추상 형태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E7의 작품세계도 ‘추상화된 회화’의 영역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은 앞서 말한 대로, 화면 속에는 흘러버린 시간의 영역에서 추출된 많은 구체적인 대상물이 추상화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E7의 작품 세계는 생성의 단계에서 빠른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첫 번째 개인전에서 ‘껍데기’라는 제목으로 인간의 외형적 측면을 분석하고자 하는 초점이 모아졌다면, 두 번째 개인전은 감수성을 즉흥적으로 드러내는 드로잉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전후이음 - 재짜임」이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지는 이번 세 번째 전시회는 추상화되고 기호화된 형상들이 역사성 혹은 시간성의 개념에서 솜씨 있게 다듬어지고 빈틈없이 짜여져 있다. 판독해내기에 어려움이 없을 듯 보이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어렵게 보이기도 하는 그의 최근 작품들에서 우리는 꿈틀거리는 새로운 일루전의 창출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시간의 흐름 속에 남겨진 것들의 뿌리를 껴안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 조형적 체험의 진폭을 넓혀보려는 작가의 구체적인 시도와 함께 나타나기에 그에게 거는 기대가 더욱 큰 것인지도 모른다.
李鐘崇(미술평론가)